제1회 여명의 다대포

김정수 기자(sochisum1143@hanmail.net) 2012-10-14 08:12

제1회

여명의 다대포
 
임진왜란 발발 불과 이틀전인 임진년 4월12일(양력 5월22일) 새벽 인시 경이다.
그날따라 다대포의 밤은 유난히 적막했다. 삼라만상은 마침 죽음과 같은 깊은 수면의 나락으로 빠져든 듯 교교 했다. 달빛도 별빛도 없는 칠흑같은 암야였다. 파도소리나귀뚜라미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나뭇잎끼리 서로 부딪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형체가 있는 것들이나 빛깔이 있는 것들이나 호흡이 있는 것들이나 모두 어둠에 깊숙이 잠겨 숨을 죽였다. 해오라지 보이지 않은 살의가 들리지 않은 적의가 다대포의 어둠을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깨어있는 자 는 느꼈으리라, 살아있던 자는 느꼈으리라, 그 어둠속에 섬뜩한 칼날을 숨기며, 그 비릿한 바다내음속에 피비린내를 숨기며, 잔혹한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던 이단의 살기를 느꼈으리라.
 
나는 그 시각에 다대포진영청 의 관사 서현 사랑방 침상에서 몸을 반쯤 일으킨 채 불편한 심기로 뒤척이고 있었다. 간밤의 꿈자리가 몸시 잔혹하고 사나운 터라 마치 가위에 눌리기라도 한 듯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났던 것이며, 베고 자던 베갯잇이며 깔고 덮던 요와 이불이 간단 없이 흘려내린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있음을 확인했다.
나는 두 달여 전인 1월23일, 조정의 교지를 받잡아 정3품 당상무관 절충장군의 품계에 올랐고, 다대포진의 수군첨절제사로 발령받아 부임해온 윤흥신이다.
 
굳이 남의 입을 빌어 나의 인상에 대해 말하자면, 이목구비가 크고 뚜렷하여 성정이 강인해 보인다 하였으며, 특히 형형한 호안으로 범상치 않은 기개가 엿보인다하였다.
그리고 체격은 육척의 거구이면서 체질마저 다부졌기에 늠름하기로도 사내대장부로서의 기상을 타고났다 하였다. 실체로 워낙 강건한 체질이라 내 나이 쉰셋에 이르도록 이렇다 할 잔병치레조차 없어기에 나는 건강만큼은 늘 장담해왔다.
그런데 근래 들어 그런 내가 피곤함이 누적된 탓인지 몸이 찌뿌듯하고 영 개운치 않을뿐더러 꿈자리마저 마냥 뒤숭숭했다.
동창이 어두컴컴하기로 한눈에 보기에 마냥 검었다. 사위는 어둠이 짙게 깔려있음이 분명하여 아직 여명이 몰려오기 이른 시각이라 여겨졌다.
 
“허... , 그것참, 참으로 섬뜩하고 괴이쩍은 꿈이로고... , ”
나는 방금 전에 꾼 꿈의 잔영을 반추하여 웅얼거리듯 탄식을 늘어놓았다. 문득 형체를 알 수 없는 어둠의 살기가 생경하게 감지되면서 수많은 적들에 의해 둘려싸여 홀로 갇힌 기분이 들었다. 땀에 젖은 속옷 깃이 축축하고, 흘린 땀이 증발하면서 목덜미께로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꿈이라기보다는 실제 겪은 일처럼 정황이 너무 사실적이고 또렷했다. 길몽인지 흉몽인지 도무지 걷잡을 수 없는 꿈으로, 끔찍하기론 그런 흉몽도 없을 것이다.
 
갑자기 내 눈앞에서 수십만 수백만으로 추정되는 도요새의 무리가 그 무엇엔가 놀란 듯 일제히 날개를 퍼덕이며 앞 다투어 비상을 했다. 하늘이 온통 검은 장막으로 드리워지기라도 한 듯 새까맣게 뒤덮은 도요새들은 안간힘을 쓰며 하늘높이 마냥 솟구치려했다. ‘도요도요, 도요도요!’ 도요새들이 내지르는 울음소리로 귀청이 아리도록 멍멍했다. 분명 그것은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참혹한 고통에 의한 절규요, 혼마저 갈가리 찢기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질려대는 아비규한으로, ‘도와줘요, 도와줘요!’ 라며 울부짖는 처참한 비명소리였다.
 
그러한 도요새무리의 그 간절함도 잠시뿐이었다. 곧이어 바다로부터 어떤 알 수 없는 엄청난 힘이 뻗어 나와 그 태산 처럼 장엄한 무리를 이룬 도요새들을 거침없이 삼켜버리는 것이다. 순간,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온몸의 솜털마저 쭈뺏 서는 사 의 살기가 전신을 흝어 내렸다. 너른 바다는 삽시간에 벌건 피로 붉게 물드고, 곧이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즐비한 사체들이 해수표면을 뒤덮듯 물위로 둥둥 떠올랐다. 사체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코가 베어져나간 사람의 시신들로 언뜻 보기에도 대개 아는 이들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아는 면면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데, 그 사체들 속에 섞여 마찬가지로 코가 베어진채 창백한 표정으로 물에 떠있는 나 자신의 모습도 눈에 뛰는 것이 아닌가. 너무 황망하여 부지중에 ‘으윽~!’ 하고 비명이 터져나오려했다. 그러나 그 순간 누군가의 억센 손바닥이 내입을 꽉 틀어막은 듯 비명은 입안에서 맴돌뿐, 숨까지 턱 막혀왔다. 그 참혹함에 절로 진저리가 쳐지는 꿈으로, 결코 예사로운 꿈이라 할 수 없었다.
 
2회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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