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임란진혼곡(壬亂鎭魂曲) 여명(黎明)의 다대포

김정수 기자(sochisum1143@hanmail.net) 2012-12-06 14:04

2회 임란진혼곡(壬亂鎭魂曲) 여명(黎明)의 다대포
 

“바다가 삼켜버린 그 도요새무리와 물에 떠오른 그 숱한 사체들…, 도대체 뭘 의미하는 것일까?”

왜국이 전쟁을 도발하리라는 것을 지나치게 우려한 탓에 그런 해괴한 꿈을 꾸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어느덧 나이 들어 소심해진 탓이려니 하는 생각에 스스로를 질책하기도 했다.

나는 내 생애를 통해 나의 서슬 퍼런 칼날로도 숱한 죽음을 생산해왔다. 전장(戰場)에서는 숱한 적의 목을 베었고, 부임지에서는 숱한 백성의 목을 베었다. 그때마다 느꼈던 죽음은 공허(空虛)하고 무의미(無意味)했다.

나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죽음 따위를 두렵게 여긴 적이 없었다. 따라서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바도 없었다. 무예를 익힌 장수라면 의당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명색이 장수라면 적이 존재하는 한 늘 죽음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그리고 죽음을 은밀히 즐길 줄 알아야한다.

  ‘죽음…, 죽음…. 바다…, 바다…. 도요새…, 도요새들…. 사체…, 사체들….’

방금 전에 꾸었던 악몽의 요소들을 되뇌는 순간 죽음의 실체가 더욱 확연하게 감지되었다. 그리고 두려움이란 가공(架空)의 적들이 검은 촉수(觸手)를 들이대며 떼를 지어 몰려드는 착각에 빠졌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후세계가 존재하리라고 믿지 않았다. 내가 남의 몸을 빌려 잠시 세상에 나왔듯이, 내가 죽으면 그 누군가가 또한 나의 몸을 빌려 세상에 나올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방금 전에 꾼 그 참혹한 꿈은 죽음에 대한 나의 기존인식을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그 꿈을 통해 죽음이 단지 생과 사의 넘나듦이 아니란 것을, 죽음을 다스리는 그 무언가의 실체가 바로 곁에, 어쩌면 내 안에 자리하고 있음을 또렷하게 인지(認知)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살의가, 들리지 않는 적의가 어두운 공간을, 그리고 내 안을 그득 메우고 있음을 분명히 느꼈다.

물위에 떠있는 숱한 주검들, 그 사체들의 면면은 내가 알고 지내온 사람들이요, 걔 중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면면이다. 그 꿈이 어찌나 생생하던지 문득 의구심이 일어 잠들어 있을 식솔(食率)들을 일일이 깨워 살아있음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살아있은들, 그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오히려 부질없는 꿈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곧 죽음의 사신(死神)이 피비린내를 물씬 풍기며 다대만의 해풍에 실려 오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 꿈은 머잖아 다가올 죽음을 현시(顯示)하는 꿈이요,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더불어 맞게 될 떼죽음을 예시(豫示)하는 꿈이리라.

온갖 불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깨어있어도 여전히 악몽을 꾸는듯했다. 그렇게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그로인한 심적 중압감 속에 한참을 뒤척이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한동안 생각의 가닥을 잡을 수 없어 망연히 방문 밖의 짙은 어둠자락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문득 먼데서 홰치는 닭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곧 여명이 여느 날처럼 어김없이 밝아올 것이다.


“꿈을 통해 현시하는 바가 도무지 뭔지….”

내 입에서 흘러나온 중얼거림이 마치 곁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처럼 내 귀에 낯설게 공명(共鳴)되었다.

무릇 그 처참한 주검의 잔해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왜구(倭寇)의 침략조짐을 간파(看破)하고도 마냥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극심한 자괴감(自愧感)의 반영인가, 아니면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오는 노심초사(勞心焦思)의 반영인가.

모든 사체들이 예외 없이 코가 뜯겨져나간 것도 왜구들이 전과물(戰果物)로 흔히 코를 베어간다는 소문을 은연중 들어온 터라, 그로인해 잠재적으로 형성된 외포심(畏怖心)이 꿈을 통해 드러낸 강박관념적(强迫觀念的) 실현(實現)인가.

꿈이란 삼라만상을 주재하는 신령(神靈)이나 조상의 혼령(魂靈)이 미래에 닥쳐올 필연적(必然的)사건에 대처하도록 예시(豫示)하는 것이라 알려져 왔다. 그리고 그런 예언적 현몽(顯夢)의 경우, 거의 빗나가지 않았음이 숱한 사례와 고증(考證)을 통해 익히 알려진 바다.

그 꿈은 다가올 미래의 일들을 미리 보여줌으로서 마땅히 받아들여야할 필연적 사필귀정(事必歸正)임을 암시하는 꿈이리라.

  “참으로 두렵도다. 왜침이 지레짐작이 아닌, 이제 곧 현실로 다가올 재난임에랴. 그렇다면 이를 어찌해야한단 말인가?”

막연한 두려움은 어찌해볼 수 없는 불가항력적 고통이다. 그렇기에 나는 한 낱 작은 기대에 염원(念願)을 걸고 큰 희망처럼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발, 공연한 기우(杞憂)로 끝났으면….’

소름이 끼치리만큼 짙은 어둠이 오히려 희디흰 화선지로 여겨져 문득 시 한 수를 떠올렸다.

 
 咷鳥不飛落(도조불비락) 도요새 비상 못하여 추락하고,

 廣海多溺屍(광해다익시) 너른 바다에 널린 것이 시체더라

 後夜夢身漏(후야몽신루) 지난밤 흉몽으로 온몸이 땀에 젖었으나,

  此中近緣憂(차중근연우) 그 경황 중에도 가까운 인연이 걱정되는구나.

  已往之不諫(이왕지불간)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어도,

  來者之可道(래자지가도) 다가올 일은 바로잡아야 할 것이니.

  天文究神策(천문구신책) 하늘의 이치에 닿을 신기한 책략을 구하고,

   地理窮妙算(지리궁묘산) 땅의 이치에 닿을 오묘한 계획을 내놓으리라.

  ※主: ‘已往之不諫 來者之可道’는 중국 송(宋)나라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잡시(雜詩)에서 인용

   
 3 회


문득 짚이는 것이 있어 서탁(書卓)에 다가가 호롱을 밝혔다. 그리고 전날 오후 늦게 파발(擺撥)을 통해 전달되어온 동래부사(東萊府使) 송상현(宋象賢)의 서찰(書札)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보았다.

급박한 심정에 초를 다퉈 흘려 쓴 서찰로 갓 정탐(偵探)하고 돌아온 밀정(密偵)의 보고내용이란 전제하에 쓰시마섬의 왜군동태가 상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다대포진첨사 윤흥신 공께 급한 전언(傳言)이 있사옵니다. 각설하고….’

송상현은 왜국의 현재 상황으로 보아 전쟁을 피하기란 불가능한 것이고, 왜국의 전쟁준비 또한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전했다.

  ‘왜국의 관백(關伯)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다이묘[大名]들을 제압하고 100년에 걸친 왜국의 분열과 혼란을 수습하여 하나의 통일국가로 평정(平定)하는데 성공하였으나, 그 과정을 통해 고조된 제후(諸侯)들의 불만과 욕구를 해소시켜줄 방도가 없자 결국 해외로 표출시키려는 의도에서 명과 조선을 상대로 전쟁을 도모하기에 이르렀사옵니다.’

  ‘이미 나고야[名古屋] 본영(本營)으로부터 해협(海峽)을 건너와 쓰시마섬 북단 오우라항[大浦港]일대에 포진(鋪陳)하고 있는 왜군 선발대의 수효가 5만이 넘는다하오며, 본토에 대기 중인 왜병까지 모두 합치면 그 병력수가 대략 20만은 족히 되리라하옵니다. 그처럼 엄청난 수의 병력도 놀랍지만 그 왜병들이 내전을 통해 오로지 전쟁만을 일삼아왔던 족속들로 하나같이 실전경험이 풍부하다하니, 그 또한 두렵다 아니할 수 없사옵니다.’

  ‘왜국은 사면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인 까닭에 일찍부터 해상에 능하고 조선기술도 발달한지라, 그들이 지닌 선단(船團)의 규모 또한 상상을 초월하리만큼 대단하다하옵니다. 대형전함(大型戰艦) 아다케부네(安宅船) 수십 척을 비롯하여 세키부네(關船), 고바야부네(小早船) 등 자그마치 천여 척에 이르는 중소형 전투함(戰鬪艦)들이 이미 오우라항내뿐만 아니라 주변일대의 너른바다를 새까맣게 뒤덮고 있다 하옵니다.’

  ‘그리고 왜국 내에선 내로라하는 장수들이 총 동원될 것으로 보이옵니다. 도요토미의 최측근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비롯하여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 히라노 나가야스[平野長泰], 가토 요시아키라[加藤嘉明],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 가타기리 가츠모토[片桐且元], 가스야 다케노리[糟屋武則] 등이 각 분군(分軍)을 이끌 선봉장으로 내정된 자들이라 하옵니다.’

  ‘이미 여러해 전부터 도요토미는 여러 정황을 통해 전쟁도발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밝혀왔나이다. 양국(兩國)을 오가는 사신(使臣)들을 통해 “명(明)을 치고자하니 길을 빌리자.[假道入明]”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조선 조정에 여러 차례나 통보해왔소이다. 조정은 그 요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묵살해온 터라, 분명 그 교섭(交涉)의 결렬(決裂)을 구실로 먼저 조선을 치고 이어 명까지 치겠다는 망상을 진작 굳힌 듯하옵니다.’

송상현은 서찰의 말미(末尾)를 통해 자신이 느끼고 있는 불안과 우려, 불만을 여과(濾過)없이 진솔하게 드러냈다.

  ‘본관은 근자에도 임금께 왜국과의 전쟁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알리고 그 대비를 촉구하는 상소(上疏)를 여러 차례 올렸으나, 이젠 본관의 상소를 아예 묵살하려드는 경향조차 보이니 항차 이를 어찌해야 좋겠사옵니까. 그렇듯, 최근 들어 왜국은 임전전야(臨戰前夜)를 방불케 하리만큼 전시체제(戰時體制)로 갖춰진데다 그들로부터 촉발(觸發)의 살기(殺氣)마저 느껴지니, 조만간 부산포 등을 통해 대거 침략해올 것이 불문가지(不問可知)이옵니다.’

송상현은 조정 대신들, 더 나아가 선조임금까지 신랄하게 비난했다.

  ‘선조임금이란 자가 워낙 소심(小心)하다 보니, 이젠 그 누구의 말도 귀를 기울이려하지 않고 잘 믿으려하지 않사옵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주도권다툼과 당리당략에만 사활을 경주할 뿐 국제정세의 흐름엔 하등 관심조차 없는 대신들의 장막에 가려, 당장이라도 들이닥칠지 모를 왜국의 위협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옵니다. 어쩌면 이런 다급한 상황일수록 임금이나 조정 대신들은 자체의 힘을 키워 대적하려하기보다 명에 더욱 의존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사옵니다. 조선이 마치 명(明)의 속국(屬國)인양 스스로 격하(格下)하길 마다않고, 명에 절대적 충성을 맹약함으로서 그로인한 호혜(互惠)를 맹신(盲信)하려드는 경향마저 보이더이다. 설마 명의 우산(雨傘)하에서는 왜국인들 함부로 침략을 경거(輕擧)할 리 없다는 방만(放漫)한 사고(思考)를 굳힌 탓이란 추측도 드옵니다.’

그리고 이후 드러난 왜국의 특이한 동향은 없었는지, 다대포진성 보수의 진척상황은 어떠한지를 함께 묻고 있었다.


나는 송상현의 서찰 내용을 곰곰이 되새기며 여러 정황을 조목조목 따져보았다.

선조임금이나 조정 대신들 대개는 백만 대군을 지녔다는 명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여온데 반해 왜국은 노략질이나 일삼는 해적무리 정도로 지나치게 과소평가하여왔다.

선조임금은 얼마 전 만조백관(滿朝百官)이 도열한 자리에서 ‘왜국의 도요토미란 자가 제아무리 큰 소리 잘치고 무지몽매하기로 감히 조선이나 명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만한 배포도 지니지 못했을 뿐더러 그럴 능력도 갖추질 못했다. 그러하니 왜국이 쳐들어올 것이라며 지레 걱정하거나 준비하는 자야말로 짐을 능멸하는 자이며, 스스로 제 나라를 업신여기는 자이다.’라 하였다. 임금이 직접 나서서 왜침에 대해 거론조차 못하도록 명하였기에 드러내놓고 전쟁준비라도 하면 자칫 어명을 거스르는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는 형국이었다.

송상현은 나와 정발에게 전쟁을 대비하다보면 역적으로 몰릴 가능성도 없잖아 있음을 귀띔했고, 그렇더라도 왜국의 침략을 좌시할 수는 없을 터이니 나름대로 철저한 준비를 하자며 거듭 다짐했다.

다대포진첨사로 부임한 이래 지난 2개월여 동안 나름대로 왜국의 침략을 대비하여 많은 준비를 하였다고는 하나, 그 미진함에 있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어디 한두 가지뿐이겠는가. 아무리 골똘하게 생각해봐도 마땅한 대책이 없기론 송상현보다 오히려 내가 더할 것이다.

    4 회

 나는 두려움과 근심으로 짓눌린 답답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홀로 관사를 벗어났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사위는 짙은 안개마저 끼어 시야가 불분명하고, 바짓단에 치렁치렁 감기는 밤이슬이 차갑게 느껴졌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람의 기척인지 아니면 동물의 기척인지 얼핏 분간할 수는 없으나 간간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로소 나 이외의 다른 것들이 내는 기척으로 인해 간밤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난 듯 여겨졌다.

 다대포진성 남문 앞에 자리한 나루터의 접안대(接岸垈)에 도착했다. 이른 시각이라 사람의 모습은 전혀 눈에 띄지 않고, 어둠속에 몇몇 돛을 올리지 않은 나룻배들과 소형 거룻배들이 잔잔한 수면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모습이 희끄무레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중에 ‘包圍(포위)’라 적힌 거룻배의 묶여있는 밧줄을 풀고 배위로 뛰어올랐다. 거룻배는 주전부나 덕판, 이물칸, 멍에뿔 등이 모두 새벽이슬을 듬뿍 머금고 있어 발을 옮기기에 꽤나 미끄러워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엉덩방아를 찧게 된다.

몰운도를 향해 노를 저어나갔다. 노가 선현(船舷)에 부딪히는 삐거덕거리는 소리와 물살을 가르는 철버덕거리는 소리가 습기 찬 적막을 고즈넉이 깼다. 어둠과 짙은 안개 속에 꿈결처럼 몽롱하게 잠겨있는 몰운도(沒雲島) 기슭에 닿았다.

얼핏 학이 날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는 몰운도는 해발 스물여섯 장(丈)에 불과한 작은 섬으로 형세가 둥글고 소담했다. 얕은 산세임에도 불구하고 울울창창한 해송군락이 더할 나위 없이 엄존(嚴尊)하여 흐트러지려는 충정과 신념을 일깨워주곤 했기에 자주 찾았다.

산정(山頂)으로 오르는 길은 대체로 완만하여 한걸음에 내달아도 숨이 가쁘지 않았다. 비록 작은 섬일지라도 산기슭의 끝은 오랜 세월 침식에 의해 깎아지른 단애(斷崖)와 층암절벽(層巖絶壁)을 이루고, 곳곳의 기암괴석(奇岩怪石)은 춤을 추듯 출렁이는 창파(滄波)와 잘 어울렸다.

몰운도의 절경은 다대만의 드넓은 황금빛 모래밭과 어우러졌을 때 더욱 빼어난 풍광을 자아냈다. 뿐만 아니라 정상에 서서 서북쪽으로 바라보면 장자도(長子島)가 아련히 보이고, 남쪽으로는 남형제도, 북형제도, 목도가 보이며, 주위로는 동이섬, 쥐섬, 모자섬, 고리섬, 자섬, 동섬, 팔보섬과 그 외에도 이름 없는 크고 작은 숱한 섬들이 다투어 신비경(神秘景)을 드러냈다. 그런 절경을 혼자 즐기기엔 너무 아깝다 여겨 간혹 귀한 손님을 맞을라치면 앞장서서 몰운도 정상으로 안내하곤 했다.

날씨는 소슬한 바람이 불어도 완연히 무르익은 봄이다. 옅은 안개가 포근하게 감싼 해송 숲은 물기를 한껏 머금고 짙은 솔향을 내뿜었다. 비록 작은 섬에 불과하지만 숲속을 한참 더듬다 보면 숲이 깊기로 얼핏 심산유곡(深山幽谷)에 들어선듯했다. 몰운도에는 꿩도 많지만 다람쥐가 유독 많았다. 나는 작고 앙증맞은데다 날쌔기로 잡기 힘든 다람쥐를 좋아했다. 그리고 고즈넉하고 습기 찬 숲속을 거닐 때 들려오는 다람쥐울음소리를 특히 좋아했다. 다람쥐울음소리는 얼핏 듣기론 새소리와 비슷함에도 독특하기론 도무지 따라 흉내 내기조차 어렵다 여겼다.

  ‘쯔쯔쯔쯔쯥, 쯔쯔쯔쯔쯥….’  

몰운도 정상에 서니 여명이 기다렸다는 듯 때마침 붉게 비춰왔다. 점점이 박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크고 작은 섬 너머 광활한 수평선에 걸린 쓰시마섬을 어림해봤다. 아직 수평선은 어둠의 잔재(殘在)를 마저 떨어내지 못하고 어둠의 계조(階調)에 굳게 갇혀있었다. 하늘이 투명할 땐 불과 일백이십 리(里)남짓밖에 떨어지지 않은 쓰시마섬이 한눈에 쏘옥 들어오리만큼 바로 지척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윽고 뻘건 태양이 검붉은 핏물을 토혈(吐血)하며 솟구쳐 오르고 노을의 파편들이 물고기 비늘처럼 살아 팔딱거렸다. 바람 한 점 없는 검푸른 바다는 자글거리는 파랑(波浪)조차도 마치 푹신한 솜이불을 깔아놓은 듯 안온(安穩)하기까지 했다. 언제 봐도 지극히 황홀하고 평온한 광경이었다.

 “고니시 유키나가라….”

핏빛 동녘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귀에 익은 왜장의 이름이 탄식처럼 흘러나왔다. 비록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그에 대한 풍문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대단한 장수인가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가토 기요마사, 구로다 나가마사, 시마즈 요시히로, 가토 요시아키라, 후쿠시마 마사노리, 히라노 나가야스, 와키자카 야스하루, 가스야 다케노리, 가타기리 가츠모토 등 몇몇 왜장들의 이름을 차례로 떠올렸다.

나는 왜국 장수들을 결코 폄훼(貶毁)하지 않았다.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온 왜국 사무라이[侯]의 무(武)는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잔혹한 검광(劍光)과 같다 여겼다. 주군(主君)을 위해서라면 그 자리에서 미련 없이 할복(割腹)도 마다않는 냉혹(冷酷)한 사무라이들이다. 그 빈틈없는 무사도(武士道)정신이 두려웠다. 입신(立身)과 사욕을 위해서라면 자존심마저 초개(草芥)처럼 버리려드는 조선의 장수들과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개의 조선 관리들은 왜국을 섬나라오랑캐라고, 또 해적질이나 일삼는다고 과소평가하여 깔봐왔지만, 그들은 100년에 걸친 내전을 통해 무예와 병법을 익힌 족속들로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닌 것이다.

‘그 보잘것없다던 왜국이 조선을 상대로, 그리고 나아가 백만 대군을 거느린 명을 상대로 전쟁을 치루겠다며 그토록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동안, 선조임금이나 조정 대신들은 대체 무엇을 했더란 말인가.’

왜국의 침략을 전혀 우려하지 않는 그들을 생각할수록 어처구니도 없지만, 한편으로는 기가 막히고 안타까울 뿐이다.

 
[ 5회 계속 이어짐
] 

 

 

 

 

 

저작권자 danews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기사평 (0)
댓글 등록 폼

로그인을 하시면 기사평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